“빈티지 시계”에 대하여 - On “Vintage Watches”

서론

많은 이들이 오랜 기간 빈티지 시계 수집을 하며 컬렉터로서 활동하지만, 우리는 정작 “빈티지 시계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은 현행을 제외한 시계 수집의 세계에 막 들어선 자라면 누구나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물론 대다수의 수집가들은 무엇이 빈티지 시계를 만드는지에 대해 다양한 개인적 정의를 가지고 있겠지만, 전 세계 빈티지 시계 커뮤니티에서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최근 나는 다른 세 명의 한국인 시계 수집가들과 (@gobugiandco / @watchanalyst_david / @seoulwatchguy) 함께 “시간 소사이어티”(@sigan_society)라는 한국 기반 빈티지 시계 커뮤니티를 설립했다. 한국의 빈티지 시장에 항상 아쉬움을 느꼈던 터라, 내가 오랜 기간 해외에서 쌓아온 직접적인 경험과 소유해 봤던 수많은 시계들을 토대로 조금이나마 한국의 빈티지 시계 문화를 컨디션과 오리지널리티를 중시하는 지식 기반의 문화로 더 성숙하게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다.

역시 모던워치에 관심이 쏠리는 서울의 시계 수집 환경을 고려하면, 우리 회원들은 전부 빈티지나 네오-빈티지 시계를 소유하고 있으나 모두가 숙련된 빈티지 수집가는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커뮤니티가 설립되어 시작하는 지금이 이 질문을 보다 공식적으로 다루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빈티지와 네오-빈티지

광범위하게 말하면,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를 진정한 “빈티지” 시계의 시대로 정의할 수 있다. 이보다 이전 시기의 시계들은 “앤티크(antique)”라고 표현하는게 적절하다. 빈티지와 앤티크 사이에는 분명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데, 빈티지 시계는 오늘날에도 착용하고 사용할 만한 관련성과 실용성을 가지고 있지만, 앤티크 시계는 현대적인 손목시계가 구상되기 이전의 시기를 말한다.

1930~1940년대 파텍 필립 ref. 130. 연한 핑크 골드와 스테인리스 스틸로 구성된 케이스, 그리고 투톤 살몬 다이얼이 결합된 극히 희귀한 ‘이중 투톤’ 구성의 개체.

다음으로 197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를 “네오-빈티지(neo-vintage)”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몇몇 레퍼런스(모델)는 매우 오랜 기간 생산되었기 때문에, 이 구분은 해당 시계가 처음 소개된 연대로 기준을 삼는다. 예를 들어 브레게 투르비용 ref. 3357은 1995년에 처음 발표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브레게의 카탈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레게 투르비용 ref. 3357. 1995년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현재도 생산 중인 네오-빈티지 레퍼런스.

최근에 제작된 브레게 3357은 분명히 현대(modern; 모던) 시계이지만, 그 정신과 미학은 네오-빈티지와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이러한 시계는 네오-빈티지이자 동시에 모던 시계로 분류하는게 가장 적절하다. 네오-빈티지와 모던의 구분은 빈티지와 네오-빈티지의 구분만큼 명확하게 나뉘는 개념은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유연하게 변경될 것이다.

지금은 “모던워치”로 분류되는 A. 랑에 운트 죄네 1815 크로노그래프 1세대. 이 시계는 머지않아 네오-빈티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빈티지 — 정의의 근거

이러한 시대 구분은 단순히 디자인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시계가 설계되고 제작되는 방식 자체의 변화에 있다. 특히 컴퓨터 기반 설계(CAD·Computer-Aided Design) 소프트웨어의 도입은 빈티지와 네오-빈티지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1930년대 빈티지 롤렉스 오이스터 임페리얼. 매우 희귀한 ‘파피용’ 다이얼을 탑재했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를 진정한 빈티지 시계의 시대로 보는 이유는, 이 시기의 시계들이 CAD 소프트웨어 없이 설계되고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로는 CAD가 상업적으로 본격 도입되며 시계 제작 전반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빈티지 시계는 기계적 완벽함과 정확도 면에서는 네오-빈티지나 모던 시계에 비해 부족할 수 있지만, 훨씬 더 인간적인 손길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시계들이 미세한 비율, 윤곽, 그리고 디테일에서 더 유기적이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1950년대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ref. 96. 희귀한 “핑크-온-핑크” 구성의 개체로, 저명한 리테일러 프레체로(Freccero)에서 판매되었다.

“빈티지” 시대에서 벗어나던 1970년대 중반부터의 과도기는 매우 격동적인 시기였다. CAD 소프트웨어의 도입과 더불어, 쿼츠 무브먼트의 등장은 전 세계 시계 산업에 또 하나의 혁신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 시기를 거치며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시계를 만들던 다수의 소규모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때부터는 규모의 확장성과 브랜드의 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위기의 시대를 생존한 브랜드들 역시 점차 “럭셔리” 중심의 방향으로 전환했다. 기계식 시계는 더 이상 일상적 “도구”가 아니라 취향, 지위, 그리고 문화적 상징성을 가진 물건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빈티지”라는 정의는 시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넘어, 당시 시계 산업을 둘러싼 문화 전반을 규정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1940년대에 제작된 18K 옐로우 골드 빈티지 롤렉스 버블백 ref. 3131. 에르베 바젤 (Erbe Basel) 에서 판매된 개체로서 특별함이 추가되었다.

네오-빈티지 — 정의의 근거

앞서 언급했듯이, “네오-빈티지”와 “모던”의 구분은 훨씬 더 주관적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1990년대에 출시된 시계를 현대 시계로 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2000년대에 출시된 시계를 네오-빈티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새천년(2000년) 이전을 네오-빈티지의 기준점으로 본다.

이 범주에는 파텍 필립 ref. 3940이나 ref. 3970 같은 중요한 랜드마크 모델들의 생산 시기도 포함된다. ref. 3940은 1985년부터 2007년까지 정규 생산되었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는 1995년에 발표되었다. ref. 3970은 파텍 필립의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 계보를 잇는 매우 중요한 레퍼런스(reference)이며,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생산되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였다. 나는 이런 모델들을 “네오-빈티지”라고 부르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극히 희귀한 “도레(Doré)” 다이얼을 갖춘 파텍 필립 ref. 3940. 네오-빈티지로 분류되는 ref. 3940은 1985년부터 2007년까지 생산되었다.

네오-빈티지 파텍 필립 ref. 3970 — 핑크 골드 세컨드 시리즈. ref. 3970은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생산되었다.

또한 앞서 언급된 브레게 ref. 3357 등 다른 중요한 모델들을 살펴보면 왜 이러한 시계들이 네오-빈티지로 분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일부 랑에 시계들 역시 네오-빈티지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랑에는 1994년에 첫 현대작을 발표한 이후 시계시장에서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해왔고, 따라서 1990년대를 네오-빈티지 시대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고 본다.

네오-빈티지 브레게 ref. 3130. 1980년대 초에 소개된 레퍼런스로, 이 개체는 1990년대에 생산되었다.

반면, 새천년 이후에 출시된 시계들은 사용된 소재가 실험적이거나 전체적으로 대담한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글씨체)를 특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빈티지”의 구분은 당분간 고정된 채로 유지될지라도, “네오-빈티지”로 분류되는 범위는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시계가 출시됨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할 것이다.

파텍 필립 5970P. 머지않아 네오-빈티지로 분류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모던 클래식이다.

오늘날 빈티지가 갖는 의미

오늘날 많은 시계들은 빈티지나 네오-빈티지 시계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과 제작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특히 독립 시계 제작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콜렉터로서 우리는 기계식 시계를 착용하는 행위 자체가 제작 시기와 관계 없이 본질적으로 낭만적이고 비실용적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높은 비트율과 투르비용과 같은 기술적 장치들이 정밀도를 소폭 개선할 수는 있지만, 현대의 컴퓨터 기반 기술과 경쟁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빈티지 시계 수집이 옛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정신에 부합하는 하나의 낭만적인 행위라면 — 개성과 인간적인 온기를 지닌, 손으로 천천히 만들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라면 — 연식 그 자체만이 고려해야 할 유일한 기준은 아닐지도 모른다.

고전적인 시계 제작 정신을 이어가는 독립 제작자 로저 스미스의 시계. 모던워치이지만 많은 빈티지스러운 요소들을 담고 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로는 CAD 소프트웨어 이전의 시절이 이러한 낭만주의를 가장 순수하게 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는 시계 제작의 모든 과정에 매우 개인적인 인간의 손길이 깃들어 있었다.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시계들을 수집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일을 넘어, 이미 지나간 한 시대의 철학과 문화를 음미하는 일이라고 느낀다. 이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 나는 미스터 포터(Mr. Porter)의 영상에서 오렐 박스(Aurel Bacs)라는 일류 경매인이 남긴 말보다 더 완벽한 표현을 떠올릴 수 없다 — “빈티지 시계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시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 어쩌면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으로 만들어졌던 시절로. (Vintage watches bring us back to times that we miss - times when things maybe weren’t perfect, but done with love.)”

1930년대에 제작된 핑크 골드 파텍 필립 ref. 570. 매우 특별한 다이얼을 갖춘 극히 희귀한 개체로, 런던에서 OAK 컬렉션의 일환으로 전시되었다.

결국 정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며, 빈티지 시계 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이어야 한다. 어떤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시계가 무엇인지, 또 언제 제작되었는지보다도, 그 수집가의 접근 방식과 태도, 그리고 철학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빈티지” 라는 단어가 단순한 연식 구분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맥락을 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진정으로 열정적인 빈티지 시계 애호가로 존중받기 위해 반드시 많은 “빈티지” 시계를 소유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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