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Dive #4 : 미도 다토미터 룰렛다이얼

[*본 글은 TimeForLab 에 2026년 8월 5일에 기고한 글을 옮긴 글입니다.]

빈티지 시계 수집의 세계에서는 이론이나 개념보다 실제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내 컬렉션에서 한 점의 시계를 선정해, 그 시계를 구성하는 디테일들을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어떤 이유에서 이 시계가 특별한지, 왜 이 시계를 구매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점이 아쉬운지까지 모두 포함해 이야기하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도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빈티지 시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다양한 실제 개체들을 통해 그 매력을 천천히,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미도 다토미터 룰렛 다이얼

오늘날 미도(Mido)는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의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30~40년대의 미도는 상당히 훌륭한 시계들을 제작하던 브랜드였으며, 지금도 빈티지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생각보다 매니아층도 두텁고, 컬렉터들 사이에서 상징적으로 여겨지는 모델들 역시 여럿 존재한다.

오늘 소개하는 시계는 특별한 미도 시계들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매력을 지닌 개체다.

케이스와 전체적인 실루엣

1930~40년대의 시계 브랜드들은 오늘날처럼 “인하우스(In House)”라는 개념을 강하게 고집하기보다는, 전문 다이얼 메이커와 케이스 메이커, 무브먼트 메이커들의 부품을 조달하고 이를 조합 및 마감하는 방식으로 시계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같은 디자인의 시계를 여러 브랜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고, 특히 크로노그래프의 경우 대부분의 브랜드들의 파츠가 서로 호완 가능하다 (예: 밸쥬 - Valjoux 기반 크로노그래프).

이러한 전문 케이스 메이커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을 하나 꼽자면 아마 프랑수아 보르젤(Francois Borgel)일 것이다. 프랑수아 보르젤은 파텍필립과의 관계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여러 중요한 파텍필립 레퍼런스들에 케이스를 공급했으며, 스틸 소재의 ref. 96 역시 상당수가 FB 케이스를 사용했다. 또한 ref. 2508/2509, 565, 1463처럼 오늘날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여러 레퍼런스들도 프랑수아 보르젤이 케이스를 제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시 파텍필립만이 프랑수아 보르젤에게 케이스를 공급받아 사용한건 아니다. 파텍필립 외에도 미도 (Mido), 독사 (Doxa), 모바도 (Movado), 율리스 나르당 (Ulysse Nardin) 같은 브랜드들이 FB 케이스를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연결관계와 이 케이스메이커가 보장하는 일정 수준의 퀄리티가 실제로 파텍필립을 중심으로 수집하는 컬렉터들 중 상당수가 미도나 모바도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하는 이 미도 시계 역시 프랑수아 보르젤 케이스를 탑재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FB 케이스”라는 이유만으로 이 시계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제작 퀄리티는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케이스가 미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칼라트라바 스타일의 러그를 매우 좋아한다. 전체적인 비율이 훌륭하고, 러그의 곡선 역시 상당히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설령 FB 케이스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게 느껴졌을 디자인이다.

여담이지만, 케이스 사이드의 마감만 보고도 어느 정도 FB 케이스 여부를 추측할 수 있다. 위아래로 스트라이핑 마감이 선명하게 보이면 케이스가 폴리싱 되지 않은 오리지널이라는 의미일 확률이 높다. 정확한 판단은 역시 케이스백을 열어서 스탬핑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그런 여건이 되지 않을 때 나름의 팁이다.

다이얼

물론 케이스 역시 훌륭하지만, 오늘 이 시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다이얼이다.

빈티지 시계를 어느 정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다이얼을 처음 보는 순간 “도대체 이건 뭐지?”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다. 첫인상이 굉장히 강렬한 다이얼인데, 놀랍게도 전체적인 구성은 상당히 조화롭게 정리되어 있다.

이 시계는 Deep Dive 첫 번째 글에서 다뤘던 길트 다이얼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보존 상태 역시 매우 뛰어나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길트로 처리된 다이얼 면적이 엄청나다는것이다. 덕분에 느껴지는 색감과 광택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개체가 탑재하고 있는 컴플리케이션인 포인터 데이트 (Pointer Date)는 빈티지 시계에서도 비교적 드문 기능인데, 이 시계에서 미도는 이를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일반적으로 포인터 데이트는 기능적인 요소로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시계에서는 오히려 날짜 표시 자체가 다이얼 디자인의 중심이 되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다이얼 전체가 하나의 룰렛 테이블이나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인상을 만들어내는데, 이런 시각적인 과감함은 당시 시계들 가운데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편이다.

이 시계가 특별한 이유는 역시, 이렇게 강한 개성을 가진 다이얼임에도 전체적인 균형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면 색감과 디테일의 밀도가 상당하며, 누가 봐도 쉽게 잊기 어려운 다이얼이다.

컬렉터의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빈티지 시계 수집가들은 결국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자신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많은 수집가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계는 그런 욕구를 상당히 잘 충족시켜주는 시계다.

포인터 데이트 자체도 흔한 기능은 아니지만, 이 시계는 거기에 더해 다이얼 디자인까지 매우 독창적이다. 여기에 프랑수아 보르젤 케이스까지 더해지면, 결과적으로 상당히 희귀하면서도 컬렉터블한 개체가 완성된다.

물론 미도 역시 훌륭한 브랜드지만, 시계를 수집할 때 브랜드 네임 자체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이런 재미있는 시계들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경험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부분이 빈티지 시계 수집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유명한 브랜드나 인기 레퍼런스를 넘어, 자신만의 기준과 취향으로 특별한 시계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수집의 본질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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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Dive #3 : 파텍필립 Ref. 34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