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Dive #5 : 타반느 투톤 칼라트라바

빈티지 시계 수집의 세계에서는 이론이나 개념보다 실제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내 컬렉션에서 한 점의 시계를 선정해, 그 시계를 구성하는 디테일들을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어떤 이유에서 이 시계가 특별한지, 왜 이 시계를 구매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점이 아쉬운지까지 모두 포함해 이야기하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도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빈티지 시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다양한 실제 개체들을 통해 그 매력을 천천히,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타반느 투톤 칼라트라바

타반느(Tavannes)와 씨마(Cyma)라는 이름은 현행 시계를 주로 수집하는 시계 수집가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빈티지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접해봤을 브랜드들이다. 훌륭한 디자인과 우수한 자체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이름을 날렸던 브랜드이며, 한때는 스위스에서 가장 많은 시계를 생산하던 제조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원래는 Tavannes Watch Co.가 본 브랜드였고, Cyma는 판매 루트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 일종의 서브 브랜드였다. 이름만 다를 뿐, 실제로 두 브랜드는 동일한 무브먼트와 케이스, 다이얼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1930~40년대의 시계들은 사실상 같은 브랜드의 같은 제품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1948년에 Cyma가 메인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Tavannes 서명이 들어간 시계들이 조금 더 희귀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은 흔히 "Watchmaker's Watchmaker"라고 불리는 예거 르쿨트르 역시 초기 역사에서 Cyma/Tavannes의 무브먼트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예거 르쿨트르라는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인 리베르소의 1세대 시리즈에서 말이다. 1931년에 출시 되었던 리베르소 오리지널에는 Lisica라는 무브먼트 제조사의 무브먼트가 사용되었는데, Lisica는 Cyma/Tavannes 계열의 무브먼트 제작사였다. 이는 타반느의 기술적 능력을 가장 직관적으로 방증하는 예시이다.

여담으로 귀블린(Gübelin)과 같은 유명 리테일러들도 에테르나(Eterna)와 더불어 Cyma/Tavannes의 부품을 활용해 자체 서명의 시계를 제작하기도 했다.

케이스와 전체적인 실루엣

이 시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단연 케이스다.

전체적인 비율만 놓고 보면 상당히 정석적이다. 1930년대의 남성 시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30.5mm의 직경에 16mm 러그를 갖추고 있으며,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러그 역시 매우 잘 디자인되어 있다. 언뜻 보면 깔끔한 칼라트라바 스타일의 케이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계의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바로 베젤이다.

이 시계는 스텝 베젤(베젤에 층이 있는 디자인을 일컫는 표현)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안쪽 스텝이 솔리드 핑크 골드로 제작되어 있다. 지금까지 꽤 오랜 기간 Cyma와 Tavannes를 집중적으로 수집해왔지만, 나는 이 케이스 디자인을 이 시계 외에서는 본 적이 없다. 물론 빈티지 시계 시장에서는 "유니크(unique)"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자주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계만큼은 그 표현이 어느 정도 어울리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케이스가 단순히 독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핑크 골드 이너 베젤의 색감은 다이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시계의 다이얼 길트 프린팅은 일반적인 옐로 골드 톤이나 실버 톤이 아니라 보다 구리빛이 도는 코퍼 톤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핑크 골드 베젤과의 조화를 고려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케이스와 다이얼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수준 높은 디자인으로 완성된다.

다이얼

물론 이 시계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는 케이스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이얼이 평범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시계는 훌륭한 블랙 길트 섹터 다이얼을 탑재하고 있다. 3시, 9시, 12시 방향에는 아라빅 숫자가 배치되어 있으며, 6시 방향에는 서브 세컨즈 다이얼이 자리하고 있다. 전형적인 1930~40년대 섹터 다이얼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검은색 배경을 이용해 상당히 세련된 인상을 준다. 앞서 언급했듯 길트 프린팅 역시 핑크/코퍼 톤에 가깝다. 이런 색감은 상대적으로 보기 드물며, 케이스의 핑크 골드 디테일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다이얼에는 상당한 수준의 트로피컬라이제이션(tropicalisation)이 진행되어 있다. 현재의 상태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만약 완벽한 글로시(glossy) 블랙 상태로 남아 있었다면 더욱 인상적인 다이얼이 되었을 것이다.

핸즈 역시 흥미롭다. 기본적으로는 소즈(swords) 핸즈 계열로 볼 수 있지만, 원형 디테일이 추가되어 있다.이러한 핸즈 디자인은 Cyma와 Tavannes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디자인이며, 일종의 브랜드 고유 디자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브레이슬릿

이 시계는 비교적 최근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물론 가죽 스트랩을 장착해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시계에 어울리는 브레이슬릿을 찾고 있었다. 문제는 조건이 까다로웠다는 점이다. 15.5~16mm의 좁은 엔드링크 폭을 갖추고 있어야 했고, 동시에 핑크 골드와 스틸이 조합된 투톤 브레이슬릿이어야 했다.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 브레이슬릿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결국 게이 프레레(Gay Frères)의 투톤 스트레치 리벳 브레이슬릿을 구할 수 있었고,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조합이 완성되었다.

게이 프레레는 빈티지 브레이슬릿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제조사다. 상태가 좋은 제품들은 가격도 상당히 높게 형성되어 있으며, 스틸 소재의 뉴 올드 스톡(New Old Stock) 브레이슬릿만 해도 디자인과 사이즈에 따라 수백만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파텍필립 역시 많은 브레이슬릿 제작을 게이 프레레에 맡겼다.

브레이슬릿의 컨디션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조합에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컬렉터의 관점에서

수집을 오래 할수록 시계를 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브랜드나 유명 레퍼런스에 관심이 가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더 가까이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디테일들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케이스에 특별한 요소가 있거나, 다이얼에 세심하게 숨겨진 디테일이 있다면 그 시계의 가치는 단순히 희소성을 넘어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물론 중요한 것은 이런 요소들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좋은 디자인은 각각의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완성된다. 개인적으로 이 시계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 역시 바로 그 점이다. 핑크 골드 이너 베젤과 코퍼 톤 길트 다이얼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보완하며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이런 시계를 접할 때마다 왜 내가 빈티지 시계에 계속 매료되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빈티지 시계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 시대의 시계에는 선택 하나 하나에 이유와 생각이 담겨있다. 빈티지 시계를 수집하는데 있어서 가장 즐거운 것은 이런 세심한 디테일과 디자인적 연결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대적 감각을 발견하고 느끼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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