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Dive #3 : 파텍필립 Ref. 3404/3

[*본 글은 TimeForLab 에 2026년 7월 1일에 기고한 글을 옮긴 글입니다.]

빈티지 시계 수집의 세계에서는 이론이나 개념보다 실제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매달 내 컬렉션에서 한 점의 시계를 선정해, 그 시계를 구성하는 디테일들을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어떤 이유에서 이 시계가 특별한지, 왜 이 시계를 구매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점이 아쉬운지까지 모두 포함해 이야기하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도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빈티지 시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다양한 실제 개체들을 통해 그 매력을 천천히,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파텍필립 ref. 3404/3

지난 글들에서는 주로 롤렉스를 다뤘지만, 나는 빈티지 시대에서 활발했지만 지금은 사라지거나 방향성이 많이 달라진 다양한 브랜드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오늘은 파텍필립을 한 점 이야기해보려 한다.

오늘 소개하는 파텍필립 Ref. 3404/3은 왜 많은 수집가들이 파텍필립을 특별하게 여기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시켜주는 시계다. 케이스, 다이얼, 무브먼트까지 시계의 거의 모든 요소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며, 각각을 따로 들여다보더라도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존재한다.

이 시계를 실물로 접했을 때의 인상은 상당히 강렬하다. 사진으로는 쉽게 전달되지 않는 특유의 존재감과 밀도가 있는데, 오늘은 그 요소들을 글과 사진을 통해 최대한 풀어보려 한다.

케이스와 전체적인 실루엣

이 시계의 케이스는 앞서 언급했듯 “웅장한” 인상을 준다. 단순히 크기(28 mm x 33 mm) 때문이 아니라, 마감과 디테일에서 오는 밀도감이 매우 강하다.

사실 Ref. 3404/3은 일반 3404에서 파생된 레퍼런스다. Deep Dive 첫 번째 글에서 언급했듯이, 레퍼런스는 기본적으로 케이스를 중심으로 구분된다. 일반 3404는 비교적 단순한 브러시드 베젤을 갖추고 있지만, 3404/3은 플로렌틴 피니시(Florentine Finish)가 적용된 베젤을 사용한다. 기본적인 실루엣이 동일하고 이러한 마감의 차이 때문에 완전히 다른 레퍼런스로 분리되지 않고 파생 레퍼런스로 분류된 경우라 볼 수 있다.

이 개체의 컨디션 역시 매우 훌륭하다. 플로렌틴 마감은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잘 유지되어 있으며, 금 케이스의 홀마크(hallmark)들 역시 깊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 폴리싱 된 이력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계이다.

이 시계에서 매력적인 또다른 요소는 케이스백 인그레이빙(caseback engraving)이다. 오리지널 오너가 직접 의뢰해 새긴 각인인데, 손으로 작업된 특유의 질감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도 과거 친구에게 시계를 선물하며 케이스백 각인을 의뢰한 적이 있었는데, 현대 레이저 각인의 지나치게 균일한 깊이감이 주는 느낌에 다소 아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수작업 인그레이빙은 완성도와 별개로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다.

내가 빈티지 시계를 좋아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시계들이 누군가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품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대다수의 빈티지 시계 수집가들이 공감할거라 생각한다. 이런 각인들은 사람들이 시계와 살아가며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이 취미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 부각시켜준다.

이 시계가 여전히 1960년대의 오리지널 스트랩과 버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실제 착용 횟수가 많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요소이며, 흔히 컬렉터들 사이에서 “Safe Queen”이라고 부르는 개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계들은 컬렉터로서 실착용이 꺼려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수집가치는 최고다.

다이얼

다이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소는 단연 인덱스일 것이다. 일반적인 프린트나 어플라이드 인덱스가 아니라, 손으로 음각 처리된 인그레이브드(engraved) 인덱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이얼의 입체감을 훨씬 더 강조하며 빛에 따라 인덱스의 표정도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인덱스를 사용하는 파텍필립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다이얼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대의 파텍필립 다이얼들은 대부분 단순 프린팅이 아닌 에나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흔히 “Hard Raised Enamel”이라고 표현되는데, 먼저 다이얼 디자인을 음각으로 새긴 뒤 그 안을 에나멜로 채우고 구워내는 방식이다. 일반 프린팅과 달리 쉽게 손상되지 않기 때문에, 종종 “Indelible Dia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ref. 3404/3에는 6시 방향에 “Gübelin” 서명이 함께 들어가 있다. 귀블린(Gübelin)은 티파니와 유사하게 파텍필립의 주요 리테일러 중 하나였으며, 이처럼 리테일러 이름이 함께 표기된 “더블 싸인” 파텍필립들을 종종 접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경우 이 리테일러 서명은 리테일러 측에서 별도로 추가했기 때문에 기본 다이얼 요소들과 달리 에나멜이 아닌 프린팅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시계는 불면 없어질 수준의 약간의 먼지는 있으나 훌륭한 다이얼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다이얼 컨디션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많은 입문자들이 단순히 “깨끗한 다이얼”을 좋은 다이얼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재생 여부를 떠나 다이얼이 한 번이라도 과도하게 세척이나 청소되었는지는 그 시계의 가치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Patek Philippe Genève”에서 Genève의 두 번째 “e” 위 악센트, 그리고 “Patek, Philippe & Co. Genève”에 들어가는 콤마와 악센트들은 에나멜이 아닌 매우 섬세한 프린팅 요소들이다. 따라서 다이얼이 세척되면 가장 먼저 사라지거나 손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브러싱 자국과 같은 물리적인 손상과 더불어, 이러한 디테일의 소실은 해당 다이얼이 청소되었음을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번 글에서는 무브먼트를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이 시계 역시 상당한 수준의 마감이 적용된, 제네바 씰 인증을 받은 수동 무브먼트 칼리버 23-300을 탑재하고 있다. 실제로 케이스백을 열어보면 왜 파텍필립이 오랫동안 높은 평가를 받아왔는지 어느 정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컬렉터의 관점에서

이 Ref. 3404/3은 비교적 비주류에 속하는 레퍼런스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파텍필립 특유의 케이스 마감, 다이얼 퀄리티,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대로 경험할 수 있으면서도 Ref. 96과 같은 대표 인기 모델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개체들을 제외하고는 더 희귀하기도 하다.

파텍필립은 무엇보다 컨디션이 중요하다. 동일한 예산 안에서 최고 수준의 상태를 경험하고 싶다면, 오히려 이런 비주류 레퍼런스들이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런 시계들은 수집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흥미롭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인기 모델들과 달리, 실제로 해당 레퍼런스를 직접 접해본 컬렉터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보다 깊은 대화와 정보 교류가 가능해지고, 단순히 “유명한 모델”을 넘어서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객관적으로 좋은 퀄리티를 경험하고 싶거나 보다 깊이 있는 빈티지 수집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이런 레퍼런스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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