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의 '5' - Looking back on “Collector’s Five”
*본 글은 TimeForLab 에 2026년 4월 14일에 기고한 글을 옮긴 글입니다.
해외 커뮤니티 중 가장 활성화되어있는 것은 인스타그램이다. 물론 타임존, 워치프로사이트, 그리고 오메가 포럼 처럼 오랜 기간 포럼 형태로 유지되는 곳들도 있지만 인스타그램의 정보 공유가 가장 다양하고 빠른 편이다. 실제로 딜러와 컬렉터, 그리고 컬렉터들 사이의 거래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많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영국 기반 컬렉터/딜러인 조던 (Jordan Green, @jgwatchesuk)도 이 인스타그램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깊이있는 정보와 더불어 'Collector’s Five' 라는 콘텐츠를 운영했었다. 인지도 있고 좋은 컬렉션을 소유한 컬렉터를 섭외해서 가장 이야기 하고 싶은 5개의 시계를 선정해서 이야기 해보는 코너였다. 나는 조던의 콘텐츠가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바로 컬렉터들이 시계를 구매하거나 간직하게 되고 이 코너에 피처링 할 정도로 아끼게 된 것에 관한 이유와 스토리에 대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집중했기 때문이다. 조던의 페이지에 피처링 되는 컬렉터들의 리스트를 보면 왜 이 인터뷰가 꽤나 의미 있었는지 이해하기 쉽다. 몇명만 나열해도 @vintagelongines, @pucci.papaleo, @goldberger, @mentawatches 등 빈티지 시계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다 알만한 이름들이 피처링 되었다.
감사하게도 2022년 4월에 나도 기재되었다. 역시 나도 5개의 시계를 선정했었다. 그 당시 내 컬렉션에서 최고의 5개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나는 내 컬렉션 전체를 인스타그램에 노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비밀리에 간직하는 시계도 여럿 있다), 나름 의미 있고 훌륭한 시계로 라인업을 갖추었다. 조던은 5개의 라인업을 컬렉터들이 자유롭게 꾸리게 하지만 매우 재미있는건 반드시 500파운드 이하로 구매한 시계 하나를 포함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의 컬렉팅 철학과 굉장히 잘 맞았다. 나는 가격이나 브랜드를 가장 중요시 여기지 않고, 디자인과 컨디션을 우선적으로 두고 수집을 한다. 그래서 내 인스타그램 피드나 웹사이트에서는 정말 고가의 파텍필립부터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작은 시계들까지 골고루 소개하고 있다는걸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점이 내가 어느정도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고 컬렉터들의 인정을 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시계를 허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해서 수집하는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의 Collector’s Five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다.
1. 파텍필립 (Patek Philippe) 퍼페추얼캘린더 크로노그래프 3970R 2시리즈
옥스퍼드에서 학교를 다닐 때 가장 절친했던 컬렉터 친구한테 구매한 내 컬렉션의 기둥 중 하나다. 파텍필립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컴플리케이션을 말하라면 당연히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라고 할 수 있을텐데, 파텍필립의 가장 중요한 이 계보는 레퍼런스 1518, 2499, 그리고 3970으로 이어진다. 이 모델들은 손목시계라는 컨셉이 존재하는 한 가장 중요한 라인업 중 하나로 여겨질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여기서 소개했던 개체는 3970 중에서도 더 특별한데, 바로 이 시계는 2시리즈 (3970은 4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고, 1/2시리즈는 현저히 더 희귀하다) 핑크골드 개체이기 때문이다. 케이스백도 사파이어백으로, 이렇게 생산된 개체수는 극히 적다. 수많은 시계를 접하지만 확실히 컬렉션에 오래 남는 시계들은 스토리가 있는 시계들이다. 친구와의 우정을 뜻하기도 하는 시계라 오랫동안 내 컬렉션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말할 수 있다.
2. 파텍필립 칼라트라바 2555J, 귀블랑 더블사인
빈티지 컬렉팅을 오래 하고 활동을 활발하게 하다 보면 보통 자금적인 이유로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지만 파텍필립을 구매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또 그와 별개로 나는 파텍필립을 구매할 때는 매우 까다롭다. 이 때 만큼은 컨디션이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다. 레퍼런스 2555J는 요즘 가장 인기 많은 시계 중 하나인 파텍필립 레퍼런스 96과 많은 점을 공유한다. 같은 칼라트라바 DNA (작은 사이즈의 케이스, 플렛 베젤, 유려한 곡선의 러그) 를 지니고 있지만, 96의 three-parts 스냅백 케이스와 달리 two-parts 방수 케이스라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2555는 생산량이 적었던 희귀한 레퍼런스여서 상태가 좋은 개체를 찾는게 꽤나 어렵다. 까다로웠던 내가 이 시계를 구매했던 이유는 바로 좋은 컨디션과 스토리였다.
이 시계는 첫 구매자의 후손에게서 왔고, 1965년 시계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모든 악세서리와 페이퍼들을 보존하고 있었다. 보증서와 상자는 물론이고 구매 영수증과 오리지널 스트랩까지 갖춰져 있었으니 컬렉터로서 구매할 수 밖에 없는 시계였다.
3. 귀블랑 (Gubelin) 트리플 캘린더 길트 다이얼
귀블랑은 빈티지 시계를 좋아한다면 필히 알아야 하는 이름이다. 스위스 루체른을 기반으로 하는 리테일러인데, 수많은 중요한 파텍필립 시계에 더블사인을 한 이름으로 잘 알려져있다. 자체적인 시계 라인업도 갖추고 있었는데 이테르나, 씨마/타반느 등의 파츠를 자체적으로 마감하고 본인들의 이름을 다이얼에 적어 판매했다. 이 트리플 캘린더는 매우 견고한 스틸 케이스와 훌륭한 블랙 길트 다이얼을 탑재하고있다. 이 시계에서 정말 특별한 점은 바로 요일(day)/달(month) 휠이 다이얼에 매칭되도록 검은색 바탕에 노란 글씨체로 처리 되었다는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디자인 요소지만, 매우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귀한 디테일이다.
4. 레오니다스 (Leonidas) 길트 섹터 크로노그래프
내가 앞서 언급한, 컨디션과 디자인을 가장 중요시하며 수집을 한다는 철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케이스(32.5 미리 스냅백 케이스)에 정말 놀라울 정도로 상태가 좋은 블랙 길트 섹터 다이얼을 탑재했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완벽하다 생각하는 시계다.
5. 루시나 (Lusina) 타임온리 길트 섹터 다이얼
내 컬렉션에서 몇 안되는 크롬 케이스를 탑재한 시계다. 조던의 500파운드 구매가 시계 필참 요구에 포함하게 된 개체인데, 이 요구가 없었어도 충분히 포함될 만한 시계다. 크롬 케이스는 스틸 케이스에 비해 파티나와 에이징이 별로여서 평소에는 피하지만, 이 시계는 전체적인 상태가 좋았고 다이얼의 디자인에 압도되었다. 사실 'unique' 라는 단어는 빈티지 시계 커뮤니티에서 심하게 남용되는데, 이 루시나의 다이얼에는 참으로 어울리는 단어다. 주로 길트 다이얼은 텍스트가 흰색이나 노란색인데 이 다이얼은 핑크 스크립트로 이루어져있다. 매우 매력적인 트로피컬 파티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다이얼의 섹터 레이아웃이다. 수천개의 시계를 접한 나도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압도적인 다이얼 디자인이 처음에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수많은 요소들을 과하지 않게, 그리고 균형감 있게 배치해 놓은 이 시대의 다자인에 감탄이 나올 따름이다. 나의 구매가격은 저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시계다.
이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서 구매했거나, 나름 스토리와 의미가 있는 시계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시간이 흘러간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재미있다. 나름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내 컬렉션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되었던 시계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 중 파텍필립 2555J, 귀블랑 캘린더, 그리고 레오니다스 크로노그래프는 더 이상 내 컬렉션에 속해있지 않다. 경제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컬렉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집가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하는 갈림길에 자주 놓이게 된다. 새로운 시계를 들이려면 기존 컬렉션의 또 다른 시계를 판매해야 하는 상황이 허다한것이 현실이다.
방금 언급한 세개의 시계는 판매를 했지만, 아무나한테 판매하지는 않았다. 나는 애착이 많이 가는 시계일수록 판매글을 올리지 않는다. 내가 아꼈던 시계를 그 다음의 소유자도 같은 마음으로 아껴줄 확신이 드는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신이 들 때만 판매할 수 있는 시계들로만 내 컬렉션을 꾸리는게 나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뒤돌아보며 중요하게 꼭 언급하고 싶은 점은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내 취향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인터뷰에 참여했을 때도, 지금도 내 컬렉션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인의 시계들로 이루어져있다 -구성이 조금 변했어도 기본적인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가 기존보다 훨씬 활발해져서 유행도 자주 바뀌고 시장 흐름의 유동성도 더 강렬하다. 4년전의 컬렉션을 생각해 보면 나는 트렌드와 시장 흐름을 민감하게 따라가기보다는 내 취향을 온전히 찾고 어느정도 정착을 했다고 느낀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나는 진정한 수집가는 나름의 전문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행을 따라가고 시장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것도 좋지만, 컬렉터로서 스스로에게 중요한 의미를 찾는것이 가장 뜻깊은 수집의 본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꽤 오랜기간 깊이 시계생활을 하면서 느낀건, 나에게 시계의 소중함은 시계의 가격이나 외부의 인정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