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관심사, 그리고 시장의 트렌드: 네오 빈티지 브레게
*본 글은 영어로 2025년 11월 6일에 본 사이트에 기재된 글을 바탕으로 TimeForLab 에 2026년 3월 20일에 기고한 글을 옮긴 글입니다.
내가 빈티지 시계를 주로 수집하게 되는 여러 이유가 있다 - 의외로 생각해보면 꽤나 객관적인 이유들이다. 물론 생산 품질의 차이, 대중적인 현대 시계에서 느낄 수 있는 영혼과 캐릭터의 한계, 그리고 빈티지 시계가 지닌 ‘완벽한 불완전함 (perfect imperfections)’도 중요한 부분들이다. 하지만 희소성과 더불어 빈티지 시계가 나를 끌리게 하는 두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다이얼 타이포그래피(dial typography)와 다이얼 깊이감(dial depth)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대다수의 대중적인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 놀랍게도 파텍 필립을 포함해서 - 다이얼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시계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에서는 꽤 괜찮아보이지만 실물로 시계를 접했을 때 매우 평평하고 2차원적인 느낌을 주는 다이얼들이 허다하다.
좋은 예가 파텍필립 ref. 5059이다. 특이한 오피서 케이스의 레트로그레이드 퍼페추얼캘린더 시계로 개인적으로 이 모델의 뛰어난 가성비 때문에 여러 번 구매를 고려했었다. 그러나 이 시계를 실물로 접해보고 생각을 접었다. 다이얼은 퍼페추얼 캘린더 윈도우를 제외하면 완전히 평평했고, 현대적인 타이포그래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나만이 이런 감정을 느낀게 아닐것이라 확신하고,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레퍼런스가 시장에서 ‘저평가’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훌륭한 장인정신과 독창적인 디자인 외에도 대형 브랜드들이 디테일한 부분에 소홀한 것이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가파른 부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일부 독립 제작자들(Romain Gauthier, De Bethune, MB&F 등)은 매우 새롭고 전위적인 것들을 제시한다. 반면 다른 독립 제작자들(Kari Voutilainen, Rexhep Rexhepi 등)은 좀 더 클래식한 성향을 보인다. 이러한 이름들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바로 다니엘 로스(Daniel Roth)다. 이 워치메이커가 본인 이름으로 창설한 브랜드는 지난 10년 사이 인기가 급격히 상승했다. 뛰어난 다이얼 디자인과 기술적으로 훌륭한 무브먼트, 그리고 독특한 케이스 디자인 덕분에 그의 시계들은 분명한 개성을 지닌 아이코닉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다니엘 로스 투르비용 C187
다니엘 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은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 1975년부터 1988년까지 브레게를 이끌었다. 그는 브레게의 디자인 언어와 브랜드 방향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ref. 3050, 3130, 3350등 많은 아이코닉한 모델들을 만들었다. 브레게의 유서깊은 역사를 존중하면서 나름 본인의 철학도 같이 담아내며 실로 영원한(Timeless 한) 디자인들을 만들어냈다. 최근까지도 브레게는 저평가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근래는 마침내 ‘로스 시대 (Roth Era)’의 브레게가 시장에서 인정받고 주목받는 모습이다.
브레게 ref. 3130 — 전설적 no. 5 포켓 워치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오랫동안 빈티지 시계를 중심으로 (여기서 내가 말하는 빈티지는 60년대 혹은 그 이전을 일컫는다.) 수집해온 나는 브레게가 이제야 적절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물론 브레게의 케이스 디자인은 모두의 취향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다이얼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안목 있는 수집가들도 만족시킬만한 뛰어난 디테일과 깊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요소와 디테일이 많음에도 균형이 깨지지 않고, 다영한 기요셰(guilloche)와 훌륭한 다이얼 마감이 조합되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절제된 로마 숫자의 사용과 클래식한 타이포그래피가 더해져 독특한 디자인 언어가 완성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브레게는 틀림없이(unmistakably) 브레게다.
브레게 ref. 3617 — 레마니아 기반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
나는 진심으로 다이얼이 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네오 빈티지 브레게의 다이얼은 Galvanic Gilt 다이얼이나 Applied Indices 가 있는 투톤 다이얼을 모으는 빈티지수집가들조차 만족시킬만한 요소가 많다. 특히 기요셰와 브러시드 메탈릭 피니시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투톤 효과는 빈티지 시대의 투톤 다이얼을 연상시킨다. 시각적으로 즐길 요소가 매우 많지만 신기하게도 과하지 않다.
브레게 ref. 3050
브레게 ref. 3355
지난 수 년간 나는 거의 네오 빈티지나 현행 시계에 관심이 없었지만, 네오 빈티지 브레게는 그 매력에 더 일찍 빠지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브레게의 아름다움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1930~40년대에 지나치게 몰입해 있었기에 실제로 이 분야에 시간이나 자금을 투자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여름, 나는 나름의 브레게 캡슐 컬렉션을 구성할 수 있었다 - 이제는 아이콘이 되어버린 퍼페추얼 캘린더 ref. 3050 두 개(이탈리아어 다이얼 초기 개체와 독일어 다이얼 후기 개체), 르마니아 2310 기반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 ref. 3617, 전설적인 브레게 No. 5 회중시계에서 영감을 받은 ref. 3130, 투르비용 ref. 3357, 그리고 스켈레톤 투르비용 ref. 3355. 이 시계들은 모두 훌륭한 착용감을 가지고 있고, 미적 균형이 좋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전히 시장에서 저평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브레게 캡슐 컬렉션 — ref. 3357, 3355, 3050, 3130, 3617.
물론 나도 여전히 갖고 싶은 모델은 많다. 예를 들어 ref. 3350 (3시 방향에 문자가 없는 투르비용)이나 ref. 3637 (미닛 리피터) 같은 모델들이다. 하지만 지금 컬렉션 구성에 꽤 만족한다. 최근 경매와 시장 흐름을 보면 브레게가 확실히 주목받고 있다는걸 느낀다. 네오 빈티지 브레게를 하나 들일 생각이 있었다면 지금이 괜찮은 시기일지도 모른다.
2025년 출시한 브레게 ref. 7235
근래 브레게 브랜드가 보여주는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신제품들을 보면 브레게는 확실히 자신들의 과거를 잘 활용하면서 새로운 것을 함께 담는 방향성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신제품들이 꽤나 호평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확한 로스 디자인 유산을 담은 후기 모델들을 출시하되, 현대적인 요소도 매우 균형감 있게 잘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시 연쇄반응으로 빈티지와 네오 빈티지 브레게에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